나는 사진이 좋다

사진 2013.11.30 20:56 |


내가 처음 사진을 시작한 날은 스무 살이 되던 해, 2009년 5월 6일이었다. 2월에 스키장에 갔다가 디카를 잃어버린 것이 계기가 되어, 친구의 DSLR을 중고로 사게 되었다. 당시에는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보다는 반쯤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그리고 왠지 DSLR이 멋져 보여서 그랬지만, 그 때의 그 결정은 내가 살면서 가장 잘 한 결정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몇 달 동안, 완전히 사진에 푹 빠져버렸다. 사진 찍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 항상 밖에 나갈 때는 카메라를 들고 나가서 내 주변의 일상들을 렌즈 속에 담았다. 그날그날 따라 바뀌는 하늘, 집 오는 길에 무심히 피어있는 꽃과 풀들, 공원의 푸른 나무들, 비 오는 날의 풍경, 저녁의 반짝이는 강남역,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등등…. 사진 찍는 일이 참 즐거웠다. 그 당시엔, 도서관에 가서 사진학 관련 책들을 읽고,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감상하고, 사진 보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 보는 등 어떻게 하면 사진을 더 잘 나오게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내가 사진에 가장 매료되었던 이유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 아쉬워서였다. 고등학교 3년을 바쁘게 보내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스무 살이 되어 있었다. 난 아직 이십 대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시간의 흐름이 나를 앞으로 계속 재촉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게 되면서 시간이 빠르다는 것이 그다지 아쉽지 않다고 느껴지게 되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 기억할 수 있으니까. 즐겁고 행복하고,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과 장소들, 남겨두지 않으면 흘러가버릴 것들을 사진으로 붙잡아두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만약 셔터스피드 1/10초로 사진을 찍는다 치면 1초에 10장, 1분에 600장, 1시간에 36000장, 하루에 864000장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다. 그 모든 순간들을 빠른 시간의 물결에 그냥 흘려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수많은 순간들 중 가장 빛나는 순간들, 가장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남겨 놓는 것이다. 

대학교에서도, 바쁜 일상 속에 사진은 나에게 쉼이 되어주었다. 그 당시에는 학교에 자주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가끔씩 다니다 보면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과 순간들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나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고,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사진은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있다. 평소였으면 그냥 지나쳤을 사소한 것도 아름답고 감사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내가 좀더 삶에서 많은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해주었다. 

처음 사진 찍을 때는 풍경사진과 일상의 스냅사진들을 매우 좋아했지만, 갈수록 점점 나는 인물사진이 좋아졌다.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인물사진, 행사 사진 등을 부탁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기꺼이 그 순간들을 기록해주었다. 그 기록들은 그 사람들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기억이니까. 나로 인해 그 순간들이 남아있게 된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 같다. 

인물사진 찍는 것은 참 즐겁다. 셔터를 누르면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예쁘게, 멋있게 담아 주고 싶은 욕심에 계속 사진을 찍게 된다. 스트랩을 손목에 감고,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붉은색 AF point를 조정하여 초점을 맞춘다. 뷰파인더 너머로 피사체가 될 사람의 눈을 보고, 직감적으로 조리개와 노출을 조정하고, 구도를 움직인다. 모든 것은 짧은 순간 안에 이루어지기에 더욱 짜릿하다. 셔터가 찰칵 하고 눌리는 그 순간, 순간은 영원해진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진을 찍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반짝이는 순간들을 그렇게 선물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행복하다. 이곳 의과대학에 와서도, 인물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던 것 같다. 사진 찍는 사람으로 느끼는 책임은 은근히 크다. 사진을 찍으면 찍는 것으로 끝이 나지는 않고, 후편집 및 보정을 하나하나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완성된 사진을 보면 뿌듯하다. 시간기록자로 일하는 것은, 보람 있고 행복한 일이다. 

사진을 찍으면 종종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네 사진이 많이 안 나와서 섭섭하지 않냐고. 가끔 내 사진이 많이 남지 않아서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내가 찍은 사진들은 전부 나의 시선으로 담은 사진들이기 때문에 아쉽지 않다. 기억 속에는 자신의 모습은 담기지 않는 대신, 나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담긴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건 누구보다도 나의 기억이기에,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곳 의과대학의 생활에서도, 사진 찍기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생각이 많아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 마음이 답답할 때 나는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면 피사체에 집중할 수 있어서 잡념이 사라진다. 하늘을 찍으면 마음이 탁 트이고, 햇살을 찍으면 내 마음도 햇살로 물들게 된다. 사진을 찍고 고르고 후보정하며, 그 일에 몰입하면 시간도 빠르게 가고, 나 자신을 잊을 수 있게 된다. 인물사진을 찍으면 행복해진다. 카메라를 보며 웃는 사람들을 보면, 나를 향해 웃어주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같이 웃음이 난다. 내가 렌즈로 담는 많은 것들이 나를 물들인다. 

나는 사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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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울지에 기고할 글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말했던, 그리고 조금씩 글로 남겨둔 것들을 모아서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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