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4일 월요일 저녁
일기 2012/05/15 11:03 |포스팅은 쓰고 싶은 순간이 있다. 지난 2주일동안은 쓰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시험기간이기도 했고, 시험기간 전후로 마음이 빡빡해서, 생각을 정제해서 블로그에 써낼 힘도 겨를도 없었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기고 나니 글을 쓸 마음이 생긴다.
5월 6일에 잃어버린 (정확히 말하면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 날이다) 코넬 스케줄러를 5월 14일에 찾았다. 8일동안 마음 한구석이 허했는데, 찾으니까 마음 한구석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속이 후련하고, 잃어버린 나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참 웃기다. 별거 적혀있지도 않은 스케줄러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가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일상의 사소한 기억에 집착하는 습관이 있다. 어릴 때부터 일기장은 절대로 버리지 않았고, 무엇이든 과거의 나를 담고 있는 것들이면 버리지 않았다. 문구점에서 몇천원에 사는 평범한 스케줄러 수첩들에 연필, 펜 등 잡히는 필기구들로 그날 해야 할 일들이나 스케줄들을 간략하게 적곤 했다. 코넬 와서도 비슷한 기록을 매일 했지만, 좀더 자세하게 했다. 누굴 만났고, 뭘 먹었고,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를 간략히 적었다. 그날 한 공부, 날씨, 생각, 들은 음악들도 써놓고, 별 의미 없는 낙서도 종종 있었다. 일상의 작은 스냅샷같은 느낌이랄까. 성격상 예쁘게 다이어리를 꾸미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스쳐가듯이 간략히 기록을 남기는 것은 좋아한다. 그 때 뭘 했는지 잊어도 다시 스케줄러를 보면 뭘 했는지 나오니까, 이 기록들은 내 지난 시간, 나의 일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블로그의 글을 쓰는 것은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과 같다. 평소에 내가 항상 들고 다니는 낙서노트나 (아젠다와는 별개로, 나는 일기장 비스무리하게 사용하는 낙서노트가 있다) 블로그에 임시저장글로 그 생각이 떠오를만한 핵심 문장 혹은 단어를 몇 개 적어놓는다. 그러면 마치 그 단어들이 프로모터 서열들처럼 작용해서, 응축된 DNA같은 나의 기억과 생각 실타래들을 더듬어 정확한 그 생각의 단편을 찾아낸다. 그 뒤로는 생각나는 대로 풀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생각의 프로모터" 들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고 싶은 것 같다. 블로그는 나의 거대한 프로모터 라이브러리고 (물론 풀어낸 실타래들의 시퀀싱 데이타도 잔뜩 있다) 사진찍기도 그의 연장선상일지도 모른다.
지환이가 어제 뉴욕여행에 다녀오면서 뉴욕 파리바게트에서 빵을 사다줬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팥빵을 포함해 크림소라빵, 고구마찰떡빵, 깨찰빵 그리고 화과자 하나를 사왔다. 빵 좋아하는 거 알고 이렇게 사다줘서 너무 고맙다! 지환이랑 같이 있는 시간들이 정말 재미있다. 맨날 드립치고, 놀리고(ㅋㅋㅋㅋㅋ) 웃는 시간들이 너무 좋다. 며칠 있으면 지환이가 한국에 가고, 5월 말까지 못 볼 것 같다. 엄청 보고싶을꺼다.
드디어 원서철이다. 한 군데밖에 지원하지 못해서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사실 내가 지원하려는 학교는 처음부터 변함이 없다. 내가 쓰려는 학교는 자기소개서의 공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한 질문당 5-6문장 정도로 대답하면 딱 차는 분량이다. 차라리 원서 분량이 더 긴 다른 학교 원서들이 쓰기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군더더기 없이 나 자신을 쳐내서 정제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이 작은 공간 속에는 나 자신을 포장하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다. 원서를 쓰다가 지쳐 나가떨어져서, 지금은 계속 생각을 모으는 중이다. 요즘들어 입시 때문에 몸과 마음이 계속 긴장상태에 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나 자신이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이 실천해주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랄라스윗에 빠져있다. 키보디스트 박별님의 절제되고 감성돋는 키보드 터치가 소름돋게 좋다. 전부 카피해보고 싶은 곡들이다. 특히 2번트랙 아무도, 아무것도, 그리고 6번트랙 기다려, 그리고 나의 낡은 오렌지나무. 좋은 음악, 마음에 드는 아티스트를 접했을 드는 희열이란! 이번 달에는 harvard, ephemera, 소란, 에코브릿지, 하카세 타로가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요새 또 무한반복하는 앨범은 페퍼톤스 새앨범 Beginner's Luck. 이 앨범은 양파같다. 처음 느낌이랑, 그 다음에 듣는 느낌이랑, 가사를 음미하며 듣는 느낌이랑, 다 다르다. 펩톤 특유의 텐션과 밝음이 마냥 좋지만 또 가사를 들어보면 살짝 씁쓸한 맛도 남는 곡들이다. 청양고추같은 앨범! 아무튼 요즘 내가 먹고사는 곡들은 그렇다. 또 몇 개 더 추가하자면 에코브릿지의 사랑을 시작하다와 소란의 가을목이. 아으아으 듣는 내가 다 설렌당!! 또한 오랫동안 팬심(?)을 유지해왔던 시드사운드의 별에게 소원을 앨범도 간간히 듣고 있다. 곡들이 은근히 비슷한 악기와 구성인 것이 함정, 하지만 그 대책없는 발랄함이 마냥 좋을 때도 있다.
어제 책이 갑자기 막 읽고 싶어졌다. 생각 없이 크로크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책들을 골라 봤다. 정미경 작가의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를 빌렸다. 정미경,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인데? 하다가 저번에 읽었던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있던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가 정미경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소설을 1/5정도 읽었다. 생각보다 이 책은 흡인력이 강했다. 등장인물들의 삶이 얽히고 스쳐가는 독특한 구조, 풍부한 지성과 감성을 지닌 문장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한번에 다 읽어버리면 다섯 명의 삶에 압도될 것 같아서, 조금씩 끊어서 읽고 있다. 마치 양귀자의 "모순" 을 읽을 때처럼, 등장인물들의 삶은 나를 휘감아서 압도시킨다.
나의 3년간의 코넬 생활을 정리하고 있다. 18일 금요일에 LA로 떠났다가 22일엔 예일에 간다. 다음주 25일 JFK에서 엄마아빠 만나서 같이 이타카 올 예정이다. 27일엔 졸업식, 그리고 28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간다. 일주일 뒤에 다시 돌아오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타카를 떠나는 건 이번주 금요일이기 때문에 그 전에 짐정리를 다 해야 한다. 필요 없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있다. 3년이 참 느리지만 빠르게 흘렀다. oxymoron인 건 알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드디어 이타카에서의 내 삶이 마무리지어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시원섭섭하면서도, 앞으로 갈 길이 기대되기 때문에 슬프지는 않다.
나에게는 언제나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내 마음 속엔 그 친구에 대해서,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섞여 있다. 처음에는 아쉬움과 걱정, 그리고 배신감이 찾아왔다. 콩알만했던 배신감은 점점 커져서 내가 외롭고 힘들거나 누군가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는 풍선처럼 부풀곤 했다. 그 감정은 잔뜩 부풀어올랐다가 작아졌다가를 반복하다가 어느샌가 마음속 한구석에 꼭꼭 숨겨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걔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더 커졌고,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계속 연락을 기다리려고 한다. 문득 어제 생각이 나서, 간접적으로 연락을 했고, 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소식이 어찌나 그렇게 반갑던지. 보고싶구낭 ㅠㅠ... 잘 되기를 기도할게.
지난주 일요일 찬양팀 회식에 이어 지난주 토요일에는 대학부 바베큐를 했다. 스튜어트 파크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는데, 날씨도 좋고 고기도 맛있고 환상이었다ㅠㅠ 게다가 네잎클로버를 한번에 두 개나 찾아서 기분이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네잎클로버 찾기를 좋아했었고, 찾으면 괜히 보물을 찾아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몇주일 동안 쌓였던 나를 이렇게 쏟아내고 나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나 자신을 쏟아내고 정리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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